책 읽자

식물 저승사자 (정수진)

자몽대디 2024. 11. 4. 22:51

[식물 저승사자 (정수진 저)]

 

1. 리뷰에 앞서,

 

이 책의 제목만큼 과거의 나를 잘 나타내는 단어도 없을 것 같다.

다만, 요즘의 나는 식물 저승사자보다는 식물 '선무당'이 된 듯하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표현에 나오는 서툴고 미숙한 선무당처럼 식물을 잡을 때도 살릴 때도 있는 요즘이다.

 

평소에는 손이 가지 않았을 것 같은 분야의 책이지만

경제/경영, 재테크 같은 딱딱하고 머리 아픈 책보다는, 가볍고 유쾌한 책들을 읽으며

힘을 빼고 살아가고 싶은 요즘이기에, 이 책을 선택했다.

 


 

2. 식물 저승사자

 

작가는 식물의 공간을 '볕이 잘 드는 공간, 반그늘인 공간, 그늘진 공간'으로 구분하여 이야기를 펼쳐간다.

각 공간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식물을 소개하며,

식물가게 주인인 작가는 그 식물에 대해 있었던 손님과의 에피소드를 풀어낸다.

 

'식물에게 지나친 관심을 주다 보니 과습으로 죽게 만든 손님'

'카네이션과 관련한 아버지와의 이야기'

'존재 자체도 잊고 있었지만 무럭무럭 잘 자라주던 선인장 이야기'

 

여러 에피소드와 그에 대한 식물이 기억에 남지만, 그 중 내 마음을 동하게 만든 2가지 식물을 소개해보려 한다.

 

(1) 율마

 

율마

학명: Cupressus macrocarpa

분류: 측백나무과 사이프러스속

원산지: 미국 캘리포니아

 

 

"미국 캘리포니아의 해안가를 따라 자생하던 식물로, 이후 유럽 등지로 퍼져 정원용으로 재배되었으며 바람에 강한 성질 때문에 호주나 뉴질랜드에서는 가축을 키우는 목장에 바람을 막기 위한 방풍림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책의 에피소드 중 왜 율마가 가장 나에게 인상 깊었을까 생각해 보면,

책에 소개된 에피소드 때문이라기보다는, 요즘 내가 스트레스를 푸는 순간에 옆에 있는 녀석이 바로 저 율마였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점심시간에 헬스장에서 타는 사이클을 타곤 한다.

 

빽빽한 빌딩 숲 속에서 오전 내내 스트레스를 받아도,

사이클 위 창문 틈새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율마가 부드럽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진다.

 

뭐랄까 꼭 고흐의 그림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고흐는 삼나무를 표현했지만 나는 율마가 생각난다.

고흐의 삼나무가 있는 밀밭

 

아무튼 사이클을 타며, 저 녀석을 집에 두고 싶다고 생각하던 요즘이었기에

율마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작가의 말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율마는 어떻게 기르면 좋을까?"

- 온도 관리 및 통풍 관리에 특히 신경 써야 하는 식물이다.

- 직사광선을 피해 반양지 정도의 환경을 맞춰주는 게 좋지만 채광이 충분하지 못해도 환기가 잘되는 문가나 창가 근처, 베란다 등에 두고 기르는 것이 좋다.

- 배수가 잘되는 흙과 화분에 심되, 흙 속이 건조하지 않도록 2-3일에 걸쳐 물을 흠뻑 주는 것이 좋다.

- 맨 끝 부분의 비늘잎이 약간 옆으로 처진다면 물이 부족하다는 신호다.

- 높은 온도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25도 이상의 더위를 조심한다.

 

 

 

(2) 스킨답서스

스킨답서스

 

학명: Epipremnum aureum

분류: 천남성과 에피프렘넘속

원산지: 남태평양 모레아 섬

 

이미지 출처: 월간원예

 

"스킨답서스는 번식력이 너무 뛰어나 전 세계의 열대지역에서 기존 생태계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식물로 악명이 높기도 하다. 워낙 죽이기 어려운 탓에 별명도 '악마의 덩굴', '악마의 아이비'라고 불릴 정도이다"

 

스킨답서스는 그늘진 곳에서도 너무나 잘 자라는 식물이라고 한다.

이 식물에게 내 마음이 동한 이유는 우리 집에서 키우는 아이비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내와 결혼하고 이 집에 들어온 후, 장모님께서 아이비를 선물해주셨다.

나는 거래처에서 받은 동양란들을 하늘나라로 보냈던 '식물 저승사자'였기에, 장모님이 주신 선물마저도 하늘나라로 보낼까 걱정이 됐다.

그러나 걱정이 무색하게도 아이비는 너무 잘 자라 주었다. 너무나도 잘 자라주어 길이가 내 팔만큼 길어졌으니 말이다.

 

 

휑해진 우리 집 아이비

 

아이비에게 너무 안일했던 탓일까,

아이비는 올해 여름의 습도를 견디지 못하고 곰팡이인지 식물 탄저병인지 알 수 없는 검은 반점들에게 점령당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풍성하던 내 아이비 잎들을 잘라내기로 결심했다.

휑해졌지만 조금씩 새 잎을 드러내더니, 몇 개월 후 위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다시 자라나는 아이비 녀석을 보면서, 같은 아이비과인 스킨답서스를 데려와 같이 길러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다.

잎이 무성해지는 아이비와 스킨답서스를 상상하면 즐겁기도 하지만, 다시 저승사자로 회귀할 순 없으니,

새로운 생명을 들이기 전에 어떻게 길러야 할지 작가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스킨답서스는 어떻게 기르면 좋을까?"

- 그늘에서 견디는 성질이 강하여 해가 드는 반양지부터 햇빛이 완전히 차단된 그늘에서도 문제없이 잘 자란다.

- 흙에 심어도, 물에 꽂아만 두어도 잘 자라며 건조해도 잘 견디는 편이라 흙이 마른 상태로도 오래 변형이 없이 유지된다.

- 그렇지만 최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흠뻑 물을 주는 것이 좋다.

- 번식이 매우 잘되는 편이라 줄기를 잘라 물꽂이를 하면 쉽게 뿌리가 난다.

- 추위에는 약하기 때문에 창가에서 기를 경우 겨울철에는 자리를 옮겨 집안의 따뜻한 곳에 놓는다.

 


 

3. 힘 빼고 살자

 

이 책은 키우고 싶은 식물에 대한 정보도 내게 알려주었지만, 식물의 모습에서 나를 되돌아보게도 만들어주었다.

 

"식물에 따라 물을 자주 주며 관리를 해야 하는 식물도 있지만, 물을 정말 가끔씩 주어야 잘 자라는 식물이 있다."

 

아무리 그 식물을 좋아하더라도, 때로는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보고 응원하는 것이 식물에게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사실 식물을 소개하고, 그 식물을 잘 키울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동안의 나의 지나친 걱정과 불안이 오히려 해가 됐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자기 계발을 더 해서 내가 맡은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더 키워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가진 자산을 어떻게 하면 더 불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 가족에게 고생을 덜 시킬까? 등등

 

이러한 나의 불안과 걱정들을 비웃듯,

지나친 걱정은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것을 이 책에 나오는 식물들이 말해주는 것만 같다.

 

광합성을 하는 식물은 아등바등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의 잎에 햇빛이 드리워지는 순간을 최대한 즐기고, 그 영양분을 바탕으로 성장한다.

 

괜한 불안과 걱정으로 아등바등거리고, 조급해하는 바람에 내게 찾아오는 광합성의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이제는 매일매일 내게 주어진 작은 행복을 바탕으로 내 뿌리와 이파리를 성장시키려고 한다,

다음에 찾아올 행복을 더 크게 즐기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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