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도 걸어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저)]
1. 리뷰에 앞서,
도서관의 책장을 지나다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저자의 이름이 보였다.
일본인의 이름임에도 기억에 남는 이름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어디서 그 이름을 보았을까 생각해 보니, 최근 보았던 영화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감독이자 각본가 이름이었다.
일본 영화나 드라마는 중고등학생 때 이후로는 잘 보지 않는 편인데, 얼마 전 아내와 함께 넷플릭스에서 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작품이 내 마음을 꽤나 먹먹하게 울렸다.
오랜만에 블록버스터도 스릴러도 아닌 영화를 보고 마음이 울렸기 때문이었을까, 그런 영화를 만든 사람이 쓴 소설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2. 가족이란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
이 소설은 그 분량이 길다고 할 수는 없다. 실제로 책을 보아도 어찌 보면 굉장히 얇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글은 그 길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줄거리
교외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의원의 삼 남매 중 차남이자 막내로 태어난 주인공은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40대의 남자이다. 그는 몇 년 전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가 있는 여성과 재혼한 남편이자 아버지였으며, 부모님에게는 여전히 살갑지 못한 아들이었다.
그런 그가 재혼한 아내와 그녀의 아이를 데리고 본가에 묵으며 일어나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1년에 한번 정도는 본가에 방문하는데, 이 날은 그의 형의 기일이었기에 방문한 것이었다.
그의 형은 의대에 진학할 정도로 머리도 좋고 운동도 잘하는 다재다능한 인물이었지만, 바다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다 생을 마감한 사람이었다.
형과는 다르게 공부도 잘하지 못했고, 그동안 하던 미술 복원이라는 일마저도 현재는 구직 중인 상황인 주인공은 본가에 방문하는 마음이 불편하기만 하다. 게다가, 아이 있는 여성과 재혼을 한 것도 인정을 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본가에 도착하니 그의 누나와 매형 그리고 초등학생 조카 2명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이제는 은퇴를 했음에도 그대로 두고 있는 아버지의 진료실을 치우고 본가에 들어오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 누나와 달리, 어머니는 누나의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이 불편하지는 않을지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여전히 고지식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였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까, 본가에 손님이 찾아온다.
그의 형이 목숨을 구해주었던 소년이었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살도 많이 찌고, 자신에 대해 자조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청년이 되어 그의 형의 기일마다 찾아오고 있었다.
형의 기일 때마다 그 청년은 그이 아버지와 어머니로 인해 죄책감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껴왔고, 올해 역시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는 자조적이고 어쩐지 비참해져 버린 청년의 모습을 보고 주인공은 자신의 모습이 비쳐서였을까 어쩐지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이제는 형의 기일에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내년에도 또 얼굴 비춰주렴, 약속이야, 꼭 와주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깐"이라고 말한다.
청년이 떠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저런 녀석 때문에 자신의 아들이 죽은 것이냐며 흉을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주인공과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이제는 청년을 부르지 말자는 주인공에 말이 이렇게 답한다.
"십 년도 안 돼서 잊어버리면 곤란하지. 그 애 때문에 우리 준페이가 죽은 거니까. 미워할 상대가 없는 만큼 이 쪽만 더 괴로울 뿐이지. 그 아이한테도 일 년에 한 번쯤은 괴로운 날이 있어도 그걸로 벌 받지는 않을 거야."
어머니는 형이 죽은 뒤에도 형을 잊지 못했던 것이다.
본가에서 형의 방만 그대로였던 것도, 형의 묘소에 갈 때에는 살짝 립스틱을 바르는 것도, 집에 들어온 노란색 날개를 지닌 나비를 보며 형을 떠올리는 것도 모두 형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날 저녁, 주인공은 재혼한 아내의 아이와 함께 처음으로 목욕을 한다.
어색한 공기 속에서 손바닥의 점을 문지르는 아이를 보고, 손바닥에 점이 있는 주인공도 어렸을 적 같은 행동을 했었음 기억해 냈다. 그리고 목욕 후 입은 주인공의 우스운 파자마를 보며 같이 웃는다.
다음날 아침, 아버지와 주인공 그리고 이제는 재혼한 아내의 아들이 아닌 주인공의 아들로 느껴지는 아이와 함께 바다에 간다.
언제나처럼 아버지와 있을 때에 민감한 주제의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서로 감정이 상하기에, 여느 때처럼 아버지가 자신에게 묻던 질문인 '요즘 베이스타즈(야구팀 명)는 어떤가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무뚝뚝하던 아버지는 빙긋 웃으며 '이제는 마리너스(축구팀 명)지'라고 받아친다. 그리고는 '같이 한번 갈까... 꼬맹이도 같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건강악화 생을 마감하셨기에 아버지와 축구장을 갈 일은 없었고, 어머니마저도 건강악화로 연명치료 끝에 생을 마감하시게 된다.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아들이 아니게 된 주인공이지만, 새 딸이 태어나면서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어머니가 형의 묘비에 물을 뿌려주며 말을 걸던 모습처럼, 그 역시 어머니의 묘비에 물을 뿌려주며 말을 걸고,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마주친 나비를 보며 어머니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하며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3. 가족이니까 거창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닐까
책에서 묘사된 주인공의 어머니는 그의 형이 구해준 소년이 언론계를 꿈꾸고 있다는 말을 무시하고 흉을 보기도 했고, 누나의 남편인 매형을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처럼 묘사하는가 하면, 주인공의 아내와 아이를 은근히 가족이 아닌 것처럼 거리감 있게 행동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모든 행동이 그만큼 자신의 자식들을 아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만큼 소중한 장남이고, 딸이고, 막내아들이기에 남들보다 자신의 자식이 더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객관적으로 보면 주인공 3남매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
장남은 머리 좋은 수재였지만 만약 살아있었다 하더라도 그저 그런 의사였을 수 있고, 둘째인 누나는 평범한 가정주부이며, 셋째인 주인공은 재취업을 준비하는 40대 가장이다.
남들이 보기에 그렇게 거창하고 대단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 주인공의 어머니는 주인공이 하는 미술 복원 일에 엄청난 의미부여를 하고, 그가 엄청난 걸작을 복원한다고 생각을 하기도 하며, 주인공의 일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아버지도 미술복원이 의료행위나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누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듣기도 한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예뻐한다는 말이 있듯이, 실제로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아님에도 내 자식이니까 내 자식이 하는 일이 대단해 보이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족이란 존재는 그런 것 같다.
꼭 거창하고 대단한 일을 하거나 업적을 이루지 않더라도, 내 가족이니까 눈이 가고 응원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응원과 애정을 숨기지 말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껴진다.
'책 읽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이 이뤄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시라노 (에드몽 로스탕 저, 이상해 옮김)" (4) | 2024.11.30 |
---|---|
참을 수 없이 불안할 때, 에리히 프롬 (박찬국 저) (3) | 2024.11.24 |
과욕 끝에는 허무만이 있을 뿐,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이인규 옮김) (2) | 2024.11.17 |
식물 저승사자 (정수진) (14) | 2024.11.04 |
그냥 하지 말라, 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 (송길영) (12) | 2024.11.03 |